스티키몬스터랩의 애니메이션. 검정치마의 노래와 너무 잘 어울린다. 뭐랄까. 둘 다 한국인 출신이지만 한국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아티스트들이네...
예전에 봤을때 얼떨떨해져서는 울것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오늘 하루는 비극적인 마무리가 어울릴것 같아서 찾아보곤 또 멍해졌다. 나 예전엔 미쳐 못봤는데, 가방 잃어버린 아빠가 아들에게 선물해줄 기타와 자신에게 필요한 가방이 진열된 쇼윈도 사이에서 다리를 동동 구르며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찡하지만 결국 비극이잖어 이거.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푸쉬케...라고, 중간에 드롭했던 철학 수업 첫 시간에 들었던 것 같은데. 푸쉬케 푸쉬케 아무리 말해도 내 영혼은 빠져나갈 생각을 안하네. 역시 그 역은 아닌가. 아 나는 언제쯤 푸쉬케하려나. 답답해라. 이렇게 참고 살다간 암 걸리겠다.
어린시절, 나의 행불행은 대개 외부적인 사건ㅡ날씨라던가, 주변 상황이라던가ㅡ에 의해 영향 받았지만, 커감게 따라 외부 사상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사고와 내면의 흐름이 내 삶의 전반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주도적인 입장으로 살아나간 다는게, 내가 오롯이 내 삶을 지배한다는게 처음엔 힘들기만 했다. 차라리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기쁘게 했던 과거의 날들이 더 단순하고 편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매 순간 나를 괴롭혔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온갖 이유를 대며 자학을 시도했다. 현실 속의 내가 죽도록 싫었던 나는 틈나는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상의 '나'를 완성해나갔다. 좀더 똑똑하고, 예쁘고, 성격도 좋은 나를..
가끔 나는 내가 심리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며 아찔한 순간에 빠진다. 아직도 자학의 늪에 빠져 내가 아닌 나를 그려가고 있었을까? 어쩌면 지금 나의 안정이란게 단순히 나이가 주는 성숙함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제 자리를 찾았을 흔들림. 나는 여전히 그때의 흔들림으로 어지럼증을 느끼지만 꽤 굳건히 나라는 인간을 현실 속에 뿌리 내려가고 있다. 가상의 나는 여전히 스무살. 그때 이후로 크지 않은 대신 현실 속의 나는 쑥쑤욱 자라났다. 그렇게 자라난 나는, 지난날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잘 보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걸까?
힘든 한때를 보냈다는게 이제와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걸까. 누구도 나만큼 힘들진 않았을거라고, 그래도 나는 이만큼 컸다며 지난 날의 상처를 훈장처럼 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상처를 볼때마다 지난날의 나를 떠올린다. 세상 사람들의 아픔은 사실 모두 제각각이라고, 나는 차라리 그 개별성을 믿어야 했다. 타인의 아픔을 내 테두리로 옮겨 오는것이 사실상 참 힘든 일일뿐더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나는 결국 테두리 밖의 다른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게 될 뿐이니까.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부재하니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고난의 순간들도 결국 각자의 개별적인 고통이 되고만다. 물론 그렇기에 누구나 깊어질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앞서간 이의 경험과 지혜가 온전히 전이될 수 있다면 누구도 아프지 않을 것이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 또한 없을테니까. 이러쿵 저러쿵, 대단치도 않은 과거를 무용담처럼 떠벌리며 으스대고만 있는걸까. 먼저 살아봐도 실은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되려 겪어보지 않았다는 열등감이 상대방을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거만한 표정으로 '저 나이때는 원래..' 운운하는, 심리적 성장판이 닫힌 사람들을 보면 아무런 말도 섞고싶지 않아진다. 자신이 이 나이때, 그렇게 절절하게 고민했던 것을 까먹었단 말인가?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개별적이라 믿고싶다. 나이, 성별, 학력 등의 꼬리표를 붙여 구분짓고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에서만큼은 99% 예측도 무의미하다. 1%의 오차의 확률이 있는한 섣불리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되는데, 안다는 것이, 경험이라는 것이 족쇄처럼 따라 붙어 저울질을 시작한다. 지금의 나로서는 공감가지 않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개별적이라 생각했던 나의 경험을 들춰내고, 그 아이들의 고민과 키재기를 한다. '에이, 별거 아니잖아. 나에 비하면.' 시간을 초월해 언제나 나의 아픔이 더 절절한건 사람이기 때문일까. 혼자만 상처 받은듯 웅크렸던 마음을 조금 펴보면 어떨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새에 조금씩 펴지고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작년 12월부터 홍대를 무슨 집앞처럼 들낙거리고 있다. 아. 여기서 살고싶어. 10년 이상을 산 연수동 이외에는 어디에 살아도 그다지 '우리 동네'라는 애정 없이 살아 왔는데, 홍대는 우리 동네도 아닌 것이 참 우리 동네스럽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맛있는 빵집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폴앤 폴리나와 미루카레는 근처에 가게되면 빵을 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입구라도 서성인다. 이렇게나 오감을 만족시켜 주는것이 빵 이외에 뭐가 또 있을까. 배불러서 먹을순 없지만 모양 만이라도! 냄새 만이라도! 킁킁. 오늘 홍대행은 혼자였기에 빵을 먹을 수 있었다. 폴 앤 폴리나에서 별러왔던 뺑오쇼콜라와 새로나온 버터 프레첼을 먹었다. 뺑오쇼콜라는, 역시나 파리크라상이 맛있다. 버터 프레첼을 먹고 난 뒤여서 두툼한 페이스트리가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밑에 있는 쵸콜렛층과 균형이 안 맞잖아! 그래도 폴 앤 폴리나는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니, 그냥 내 취향일 따름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버터 프레첼 이놈은 꽤 맘에 든다. 무염 버터가 짭짤한 프레첼의 풍미를 더해주었다. 프레첼이 참 금욕적인 빵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먹으면서 입에 침이 잔뜩 고였다. 은근한 욕망을 숨겨놓고 있는 놈이었다. 치즈같은걸 찍어 먹는 곳도 맛있지만 난 아무래도 프레첼만 먹거나 이렇게 무염 버터를 발라 먹는쪽이 좋다. 그 외의 빵들은 눈길도 안 주고 나왔는데 시간이 시간인 만큼 화이트바게트와 올리브빵이 간절히 생각난다! ㅠㅠ 상수, 합정 쪽에 살며 홍대 앞을 내 집 앞처럼 드나들고싶다. 거주지를 결정하는 요인에 빵이 이리도 크게 작용하다니. 제빵 기술을 배우거나 제빵사를 남편으로 두는 것도 고려해봐야겠다. 내 맘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무심코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고마워 해야 할 일이 잔뜩 밀려있다. 불평하고 화내는 일은 언제나 제때제때 미루지 않고 해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는 종종 잊고만다. 혼자 잘나서 살아가는 사람인냥 뻣대다가 어느 순간 정말로 외로워지고 마는것이다.
어제 나는 극심한 악몽과 가위눌림의 연속으로 밤을 꼴딱 새웠다. 경직된 몸으로, 하지만 또렷한 정신으로 마음 속으로 계속해서 아빠를 불렀다. 간신히 잠든 후에 찾아온 악몽. 나는 큰 소리로 아빠를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안도하는 순간에 방금전 내가 불렀던 이름을 떠올렸다.
아빠.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설움이 복받쳤다. 삶에 허덕일 때에 내가 기댈 마지막 버팀목은 역시 아빠였는데. 무엇이 아빠와 나의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걸까.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어깃장만 놓아온 아빠 덕분에 이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졌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하고싶은 일을 찾으라니요. 그냥 아빠 보란듯이 이렇게 살래요. 그런 생각으로, 하지만 아무 말도 않은채 아빠를 피해왔다.
오늘 집에 돌아온 아빠는 허리와 다리가 아프시다며 통증을 호소하셨다. 나는 지난 아빠 생일에 구입한 풋젤로 아빠 다리를 마사지 해드렸다. 평소 말도 잘 하지 않는데 발 마사지를 해드린다고 하기가 몹시 쑥스러웠고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는지 한사코 만류하셨지만 나의 용기가 한 걸음 앞서 결국 발마사지에 성공했다. "미안하구나." 아빠 역시 한 걸음 더 다가오셨다. 멋쩍어지려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어제의 악몽과 아빠를 부르며 깨어난 새벽을 말씀드렸더니 아빠도 깜짝 놀라시며 아빠 역시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니겠지. 거긴 너무 이른 시간이니 한 시간 후에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문득 든든하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한없이 위태위태 하다가도 외부의 문제로 위협 받을때면 우리는 똘똘 뭉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그 울타리의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야했다. 언젠간 나도 독립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겠지만 미리부터 그 순간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 가족과 살고 있는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테니까. 한 지붕 아래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가끔 심한 말을 들으며 아직도 애취급을 받지만, 그래도 역시나 우리집이 좋은거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지도 않으니, 나는 더더욱 우리집이 좋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미우나 고우나, 우리집!인거다.
생일이었다. 스물다섯 해 동안 우울한 생일을 보내왔던지라 이제 생일이 되면 본능적으로 우울해진다. 오늘이란 시간이 하루가 아닌, 25년이 누적된 겹겹의 시간들로 느껴져 무겁고 괴롭다. 이건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해 느꼈던 어린 시절의 욕심어린 우울함과는 또 다른 것이다. 아. 이 무거운 시간들이여! 나이 먹는게 두려운건 아니다. 이 땅에 발 디디고 있는 나를 의식하는 순간, 근원적인 고독감에 부딪히게 된다. 불확실한 오늘과 꾸준히 불확실 해왔던 지난날들이 누적되어 나를 압박한다. 살아있다는게 왜이렇게 슬픈거지? 촛불을 켜고 천진스럽게 웃기에는 너무 무거운 하루. 남들은 하루라도 즐겁게 보내라 하지만, 매일매일을 생각 없이 살아서 그런지 생일만큼은 정신이 돌아와 엉망진창으로 살아온 날들을 스스로 꾸짓는다.
왜이렇게 시니컬해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은 날씨 탓도 있겠지. 매년 내 생일은 지독하게 춥다. 뜨뜻한 자취방에서 와글와글하게 모여 앉았던 지난 생일을 생각하니 그때는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그때도 이제 정말 혼자구나,하는 실감에 참 우울했었는데 말이다. 물론 나는 그날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많은 사람들 앞에선 그 정도의 연기는 필수다. 어쩌면 그 연기에 몰입하는 덕분에 그나마 덜 우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올해대로, 생일파티 같은걸 하지 않아서 참 좋았다. 허무한데 무겁기까지한 시간 속에 마음껏 우울해할 수 있는 날이었다. 편안한 누가 옆에 있었다면 난 마음껏 투정을 부렸겠지. 내 우울함을 누군가에게 옮기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정말 오랜만에, 친구에게 외롭다고 말해보았다. 괴로움을 느끼는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것 같았다. 차가운 겨울 공기와 지독한 고독감.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루해서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도 여러 사람들의 축하로 문득문득 기분이 업됐던 하루였다. 직접 만든 케이크, 소포 꾸러미 속 수제 쿠키와 책, 아쓱바쓱 시간을 잘 맞춰온 기프티콘, 뒷좌석의 케익과 영양제, 쵸코 한 다스.. 나는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준 기억이 별로 없는데.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다. 앞으론 나도 잘 챙겨야겠다. 생일은 우울한 날이니까.